인물탐구2013. 4. 24. 08:33

알콩이의 오늘의 인물탐구 : 오늘은 왕자였지만 승려가 되었던 

의천스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의천]왕자 출신의 승려



"의천 스님, 와예서 아시면 어쩌시려고요?" 

여기는 고려의 항구인 벽란도. 

의천을 따르는 하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의천에게 물었다. 

1055년에 태어난 의천은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 즉 왕자 출신 승려였다. 

이 날 의천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남겨 두고 고려를 떠나려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송나라로 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곳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릴 적 승려가 된 이후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 왔는데, 송나라에는 천태종이라는 새로운 불교 사상이 있다고 한다. 천태종을 제대로 배워 고려에 알리고 싶다. 불교 공부를 더 하려는 건 내가 아니라 고려를 위해서다. 

그래서 가려는 것이다.


이윽고 의천은 송나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뒤, 의천은 많은 불교 경전을 배에 싣고 고려로 돌아왔다. 

아버지 문종은 아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왕자인 데다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의천은 고려에서 가장 큰 절인 흥왕사의 주지 스님이 되었다.

"우리 고려도 불경을 인쇄해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문종은 의천의 생각을 들어 주었다. 

의천은 중국, 거란, 일본 등에서 들여온 경전을 모아 속장경을 만들었다. 

그런데 속장경을 만들려면 나무에 불경의 내용을 일일이 새겨야 했고, 이것을 완성하는 데는 9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고려의 불교 경전이라고 하면 오늘날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팔만 대장경을 떠올리는데, 속장경은 훗날 팔만 대장경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의천은 불교 보급외에 나라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가진 승려였다.

당시에 고려 사람은 돈을 사용하지 않고 물건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장사를 했다. 

유학을 할 때 송나라 상인들이 화폐를 만들어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을 본 의천은 숙종에게 화폐 제도를 실시할 것을 건의했다.

 숙종은 의천의 의견을 받아들여 화폐를 만들어 보급했다. 

'해동통보'라는 구리돈이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화폐는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백성들이 물물 교환을 더 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화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화폐를 널리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조선시대 후기였다.



문자


오늘은 왠지 누구간에게 연락이 하고 싶어지는 날이네요~ 

이웃님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시길~~~ 



Posted by 쭘마렐라
궁금해2013. 4. 23. 09:58

오늘의 두번째 궁금해요~ 


뇌막염을 알수 있는 용태와 원인



뇌막염의 원인 : 

어린이에게 잘 걸리는 병입니다.

뇌수를 싸고 있는 연뇌막이란 곳에 결핵균이 붙거나 농이 괴거나 또는 물이 괴거나 할 때 일어나는 병이며, 결핵성인 것이 가장 많습니다. 

결핵성인 것은 처음부터 뇌에 결핵균이 붙는 것이 아니라 장선의 결핵, 폐결핵, 늑막염, 폐문선등으로부터 옮아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보통 사람이 알수 있는 용태:

1. 결핵성뇌막염은 처음에 열도 낮고 천천히 옮아지므로 보통 사람으로서 판단하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화농성인 것은 대개 돌연히 고열이 생기게 되며, 두통이 나고, 식욕이 없어지며, 구토와 변비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때때로 손발이 볼뚝벌뚝해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코피를 흘리기도 하고, 어린이의 머리에 보이는 숨구멍이라는 곳이 붓거나, 이를 갈거나, 목덜미의 힘살이 뻣뻣해 집니다. 


2. 병이 심해지면 눈알이 위쪽으로 돌아 혼수상태로 되며, 경련을 일으키는 동안 때때로 이상한 소리를 냅니다.


헉4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죠? 

조금은 여유로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군...




Posted by 쭘마렐라
궁금해2013. 4. 23. 09:54

오늘의 궁금해는 구점막 카타르와 아구창



1. 3세 이하의 어린이에서 이가 날 때 잘 생기는 병이며, 입 속에 좁쌀과 같은 것이 생겨 이것이 허물어져서 매우 아프게 됩니다. 

젖먹이 어린이는 젖을 빨지 못하며, 심하게 되면 구개와 혀의 가장자리까지 생기게 됨은 물론 편도선에도 번지는 일이 있습니다.


 2. 건강한 어린이라면 쉬이 낫게 되나 영양이 좋지 못한 어린이는 빨리 낫지 않습니다. 

염산카리수나 붕산수를 묻혀 바르는 것인데, 잘 낫지 않게 됩니다. 

또는 초결명을 짙게 달인 것을 나무 젓가락에 솜을 감은 것에 적신 다음 입속에 넣어 10분동안 청소를 하면 3~4시간 동안에 아픈 것이 그치게 되며, 2~3일 동안에 깨끗이 완치하게 됩니다. 어른에 있어서도 입속이 헐었을 때 5분 동안씩 입속에 머물러 있다가 뱉으며 통증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입안이 깨끗이 낫게 됩니다.

어린이는 양치질을 할 수 없으므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끔 입안에 발라주면 됩니다.


슈퍼맨


새로운 하루가 또 시작이죠~

힘찬 하루 되세용 ^_^



Posted by 쭘마렐라
잡동사니2013. 4. 21. 23:55

경풍이란 어떤 병일까요?

오늘은 경풍의 원인과 용태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


경풍의 원인과 용태


1. 경풍은 뇌의 경련이며, 뇌병에 걸릴 소질이 있는 어린이가 잘 일으킵니다. 

그리고 다른 병에서도 병을 앓게 되거나, 높은 열이 생기면 일어나기 쉽습니다. 


2. 용태로는 눈을 치뜨며 이를 다물고서 주먹을 쥐고 떨거나, 아래 위로 움직이거나 하며, 얼굴과 입술의 색깔은 보라색으로 변합니다. 

맥박은 가늘고도 일정하지 않으며, 비교적 늦게 뜁니다. 

또, 쉼쉬기가 고르지 못합니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 있어서도 심한 병을 앓고서 뇌가 침해되면 경련을 일으킵니다. 


간호 


1. 열이 높은 환자에서 빙침이나 빙낭으로 머리를 식히는 일은 이 경풍을 막는 일에 중대한 관계가 있으므로 반드시 실시하도록 해야 합니다. 


2. 경풍이 일어날 때는 제일 먼저 허리띠를 풀고 또 가슴을 열어 숨쉬기를 좋도록 합니다. 앉게 하거나 등을 두들기거나 해서는 안되며, 조용히 간호를 해야 합니다. 


3. 얼음을 천으로 싸 왼쪽 젖가슴 밑의 심장부를 식히고, 글리세린관장을 실시하면 대개는 낫게 됩니다. 

발이 차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Posted by 쭘마렐라
잡동사니2013. 4. 19. 21:09

신장병의 증세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신장병의 증세는 어떤가요?



1. 얼굴이 부어오를때 소변에 대해서 조심해 보면, 그 색깔이 짙은 홍차와 같고, 소변을 보는 횟수가 많은 반면 나오는 양이 적으면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신장염이면 반드시 소변 속에 단배길이 나오게 됩니다. 


2. 이 병이 만성으로 될 때는 평생 낫지 않게 됩니다. 

그럼에도 중한 병에 있어서 열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으므로 모두다 부주의로 인해서 사망하는 예가 많습니다. 

요독증이라고 해서 소변의 독기가 머리를 침범할 때는 어린이라면 구제되는 일이 있으나, 어른은 낫기 어렵습니다. 

심한 노동이나 달음박질은 금지해야 하고, 단백질이 나오는 양이 많으면 걷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술, 달걀, 식염 등은 독이 됩니다. 


3. 눈이 흐려져서 시력에 변화가 오면 요독증의 전조가 됩니다. 


4. 소변 색깔이 붉고 고기즙과 같으면 중증의 징조이고, 차차 엷어지면 낫게 되는 상태입니다. 


5. 신장은 요골 앞에 2개 있으며, 혈액속의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어 소변으로 만들고 있으며, 그 소변은 수뇨관을 지나 방광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을 물의 여과기와 비교해 보면, 물의 여과기는나쁜 물을 걸러 맑은 물을 내는 것이나, 신장은 혈액 속의 나쁜 노폐물을 밖으로 걸러 내는 것인데, 마치 물의 여과기와 반대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아자



아직까지 근무를 하고 계신 직장인분들 계시져?

저도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거든요 ㅡㅡ

모두들 힘내시라고 제가 화이링~~ 외쳐드려요 ^__^




Posted by 쭘마렐라
인물탐구2013. 4. 18. 13:46

알콩달콩 인물탐구 : 오늘의 이야기는 정선 입니다^^


[정선]독창적 화법으로 그린 화가






오늘도 어김없이 정선은 붓과 종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몇몇 화가가 그와 동행하였다. 

정선 일행이 도착한 곳은 한양에 있는 인왕산 아래였다. 

인왕산은 꼭대기에 수많은 바위가 솟아 있는 산이었다. 

정선은 그림 그릴 생각은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았다. 

다른 화가들은 벌써 인왕산의 모습을 종이에 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선이 붓을 들었다. 

정선의 그림을 보던 동료 화가가 깜짝 놀랐다. 

정선은 산 정상에 있는 큰 바위를 그리는 중이었는데, 넓적한 붓으로 여러 번 덧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자네는 왜 몇 번이나 덧칠을 하는 건가?" 

"이렇게 여러 번 덧칠을 해 바위를 그리면 그 느낌이 더 생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마침내 정선이 인왕산 그림을 완성하였다. 

화가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정선이 그린 인왕산 풍경은 살아 있는 동물처럼 꿈틀거리느 느낌을 주었다. 

바위에 여러번 덧칠을 해서 색의 차이를 다르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정선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림 그릴 때만큼은 배가 고픈 줄도, 시간 가는줄도 모를 정도였다. 

우연히 그의 그림을 본 이웃 사람이 그를 그림을 그리는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으로 추천하였다. 

도화서 화원이 된 후 정선의 그림 실력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몇 년 후에는 양반들이 정선의 그림을 서로 구하려고 경쟁을 할 정도였다. 

당시 화가들은 대대로 전해 오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서로 다른 화가가 그린 그림도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정선은 달랐다. 

그는 늘 새로운 그림 기법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생생한 느낌을 주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날카로운 바위가 많은 금강산을 그릴 때도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붓의 끝을 최대한 뾰족하게 한 후 먹물을 묻혀 날카롭게 솟은 바위의 선을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다른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어, 정선의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정선파'라고 부를 정도였다. 

정선은 천재 화가이자 성실한 화가였다. 

유명해지고 많은 재물을 모았는데도 그는 그림 그리는 일에만 파고들었다. 

한 번은 친구가 정선에게 물었다. 

"자네는 그 동안 그림 그리느라 얼마나 많은 붓을 사용하고 버렸나?" 

"그 동안 내가 사용했던 붓을 다 모으면 아마 큰 무덤이 될 걸세." 

무덤을 쌓을 정도로 많은 붓을 사용했던 정선. 

그는 오늘날에도 조선이 낳은 최고의 풍경 화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잠



맛점들 하셨나요? ^^

점심먹고나니 잠이 밀려오기 시작하네요 ㅎㅎ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금 힘을 빡!! 주고 있는 중이랍니다~




Posted by 쭘마렐라
낙서장2013. 4. 17. 11:51

어느 초등생이 쓴 미래의 일기


미래의 일기


3001 년 O 월 X 일


오늘은 토요일.

나는 일어나자마자 침대 밑 버튼을 눌렀다.

따끈따근한 아침식사가 실려왔다.

얼른 그것을 먹어 치우고 날개 슬피러를 신었다.

슬리퍼는 나를 건너방에 있는 컴퓨터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수업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오늘은 하늘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다. 

얼른 예쁜 옷을 입었다. 

옷을 다 입자마자 날개를 단 집은 멀리 있는 할머니댁까지 갔다.

할머니는 우릴 반겨 주시고 구름을 조금 떼어 주셨다. 

달콤한 구름은 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구름을 실컷 먹고서 할머니 댁에 있는 강아지 삐삐를 보러갔다. 

삐삐는 물을 마시고 싶은 내 마음을 알고 물을 갖자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놀다가 집으로 왔다.

참 좋은 하루였다. 



수원 잠원초등학교 4학년 달반 홍명주


쪽지에서 옮겨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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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쭘마렐라
낙서장2013. 4. 16. 09:28

눈 내린 날의 아찔한 추억





2학년때 기억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밟으며 학교에 왔다.

친구들이 눈을 가지고 교실로 들어갔다.  

나도 눈을 뭉쳐 가지고 들어와 꼬마 눈사람을 만들었다.

책상 위에 놓으면 책상이 젖을까 봐 난로 위에서 만들었다. 

그때 불이 나는 바람에 선생님이 급히 달려와 불을 끄느라 야단이 났다.

나와 친구들은 선생님과 부모님께 참 혼났다. 

난로도 다시 사야했다. 

잊을 수 없는 아찍한 추억이 됐다.


광주 삼정초등학교 5학년 1반 임민희


쪽지에서 퍼왔어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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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쭘마렐라
잡동사니2013. 4. 15. 13:36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게 해요





나만 그러할까요?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나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게 만듭니다.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이 하는 거짓말 한가지 들려줄 테니 들어 볼래요? 

비가 오는 어느 날이었어요. 

지난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치지 않고 주룩주룩 내렸어요.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운동장으로 나가서 뛰어놀수가 없었어요. 

아침 시간부터 자기 자리에서 공부만 하던 아이들은 3교시 후 쉬는 시간이 되자, 

더 이상 얌전하게 있을 수가 없었나봐요. 

여러분들이 더 잘 알듯이 아이들에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주 힘들잖아요?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이며, 복도며 생각하지 않고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뛰기 시작하면 재미있어지죠? 

도망가고, 잡으러 가고, 그러다 보면 목소리도 아주 커지잖아요?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다가 거짓말을 하기로 했지요. 


웃겨


글을 올리다보니 다음에 이어질 글이 안보이네요 ㅜㅜ

그래서 다음편은 다음 포스팅에서.. 올릴께요 ^^


월요일이라 많이들 피곤하시죠?

그래도 힘들 내세요~~ ^^





Posted by 쭘마렐라
인물탐구2013. 4. 12. 07:52

오늘의 인물탐구 문종!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왕 문종. 


1046년, 스물여덟 살의 젊은 왕자가 고려의 새 왕이 되었다. 

제11대 왕 문종이었다. 

개경에 있는 궁궐인 수창궁에서는 문종의 화려한 즉위식이 열렸다. 

즉위식이 끝난 후 왕은 신하들과 나라일을 살필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문종의 눈에 금칠이 된 화려한 의자가 들어왔다. 

물끄러미 의자를 바라보던 문종이 신하에게 말했다. 

"지나치게 화려한 의자로구려." 

"황금 의자는 대대로 왕께서 앉으시던 것입니다."

"활려한 의자에 앉는다고 왕의 권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오." 

은 왕의 겸손한 말에 신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왕은 화려한 의자를 치우고 소박한 의자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의자뿐만이 아니었다. 

문종은 금으로 자수를 놓은 화려한 이불도 소박한 것으로 바꾸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했고 총명하였던 문종은 왕이 된 후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결국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 되기로 결심했다.

늘 백성을 생각한 문종은 혁신적인 법을 만들었다. 

고려 시대에도 죄를 지으면 나라에서 조사를 해서 벌을 내렸다. 

그런데 조사를 충분하게 하지 않을 경우 잘못도 없는 사람이 누명을 쓰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문종은 새로운 법을 공포하였다. 

"사형 판결은 신중하게 내려야 한다. 반드시 세 번 심문을 하여 혹시라도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또 죄인을 심물할 때는 세 명의 조사관이 심문을 하게 하라. 그러면 한 사람이 심문할 때보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더욱 신중하게 가실 수 있을 것이다."

종의 이러한 개혁 정책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문종의 마음에 백성들이 가진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을 존중하는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불교를 열심히 믿었던 문종은 개경 근처에 큰 절을 지을 결심을 했다. 

이 때 최충을 포한한 신하들이 농사로 바쁠 때 백성들을 절을 짓는 데 동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종은 신하들의 의견이 옳다 생각하고,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만 백성들을 동원하였다..

종은 37년간 고려를 다스렸는데, 이 때 고려는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와 문화가 발전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파이팅

또 일주일이 다가고 금요일이 찾아왔습니다~
모두들 화끈한 불금들 되세영~ ^^


Posted by 쭘마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