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정의로운 변호사
김병로 정의로운 변호사 1914년, 김병로는 일본으로 유학 가 법학을 공부한 지 4년 만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는 변호사로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백성들은 법 앞에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억울한 일로 재판정에 선 조선 사람이 사정을 호소해도 일본인 검사외 판사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또 사람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김병로는 이러한 동포들의 억울함을 덜어 주는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에서는 수많은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당해 재판을 받았다.
그럴때면 법정에 자주 나타나는 변호사가 있었으니, 바로 김병로였다.
변호사는 돈을 받고 죄인의 변호를 맡지만, 김병로는 독립 운동을 하다가 잡혀 온 사람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변론을 해 주었다.
때로는 자신의 돈을 털어 독립 운동가의 가족을 돕기도 했다.
일본은 그런 김병로를 눈엣 가시로 여기고 그가 변호사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였다.
결국 김병로는 농촌으로 내려가 13년 동안 울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3년 뒤, 새로운 나라 대한 민국이 탄생했다.
대한 민국 국민이 된 후에도 김병로는 올곧은 인생을 살았다.
1948년, 대한 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김병로를 초대 대법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이승만과 김병로는 대립하였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처벌하는 데 반대했던 것이다.
친일파를 자신의 지지자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에서 였다.
그러나 김병로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친일파를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고, 친일파를 그대로 놔 두면 훗날 나라와 민족을 저버리는 또 다른 배신자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친일파의 죄를 붇지 않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김병로 또한 이승만의 정책에 끝까지 반대하였다.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립한 김병로는 수많은 위협들을 물리치고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지킨 참으로 용기 있는 법률가였다.
김병로는 죽은 후에도 대한 민국 법률가의 본보기가 되었다.
벌써 오늘 하루 반이 지났네요~
남은 오후시간도 행복하게 고고씽~~ 하세용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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